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이로쿠의 변 (문단 편집) == 사건 이후 == [[쇼군]]은 사망하고 [[무로마치 막부]]의 기능이 정지했다. [[미요시 요시츠구|요시츠구]]는 새로운 쇼군을 옹립하지 않았고 호족들을 진정시켜가며 [[긴키|키나이]]를 통치해 나가기 시작했다. [[마츠나가 히사히데|히사히데]]는 이 소식을 듣고 요시츠구의 정치 모토에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히사히데는 승려로 있던 요시테루의 동생 [[아시카가 요시아키|가쿠케이]]를 [[나라현]]에 유폐, 사실상 그를 보호해주었으며 그 약조의 서신을 가쿠케이에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두 달 뒤인 7월 28일에 가쿠케이는 요시테루의 근신 잇시키 후지나가, [[호소카와 후지타카]] 등의 도움으로 탈출하였다. 가쿠케이는 다음 해 2월에 환속하여 '''아시카가 요시아키'''로 이름을 바꾸고, [[아케치 미츠히데]]의 인도로 [[아사쿠라 요시카게]]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반면 막부를 멸망시킨 미요시 가문은 내분이 일어났다. 나가야스와 히사히데가 서로를 혐오하며 경멸하였고 이에 나가야스는 아예 요시츠구를 통해 히사히데와 반목할 것을 요청했으며 요시츠구가 나가야스의 의견에 따르자 나가야스가 본격적으로 히사히데를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히사히데는 이에 맞서 싸웠으나 영토의 크기도 그렇거니와 애초에 맞설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히사히데는 패퇴하여 미요시 가문에서 쫓겨났고 미요시 가문은 산닌슈의 원탑 체제가 되었다. 요시아키가 동쪽에서 준동하자 [[시노하라 나가후사]]는 새로운 쇼군을 옹립할 것을 주장하였다. 산닌슈는 이에 찬동하였고 결국 14대 쇼군으로 [[아시카가 요시히데]]가 선발되어 키나이로 향하기 시작, 이로써 막부는 부활하였다. 이에 요시츠구는 자신의 정치 모토를 부숴버린 것에 분노하였고 나가후사와 산닌슈의 냉담한 시선이 이어지자 히사히데에게 투신, 자신이 미요시 가문과 대립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했다. 이렇게 미요시 세력과 마츠나가 세력은 끝없이 격돌하였고 내분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않고 있었다. [[토다이지]]에서의 역공에도 수세가 변치않는 요시츠구와 히사히데는 요시아키를 옹립하고 상락의 기미를 보이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윽고 노부나가는 키나이에 당도하여 분열된 미요시 가문을 그들의 본거지인 [[아와]]로 내쫓았으며 요시아키를 15대 쇼군으로 옹립하여 막부를 재정비하고 오다 가문을 새로운 키나이의 주인으로 바꾸는 것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로써 키나이 미요시 가문은 멸망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